라이엇 리그오브레전드의 '케데헌' 짝퉁 논란으로 본 AI와 IP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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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류는 오리지널을 이길 수 없다: '케데헌' 짝퉁 논란으로 본 AI와 IP의 위기
2025년의 여름은 단연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이하 케데헌)'의 계절이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이 애니메이션은 전 세계를 강타하며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작품의 인기는 단순한 시청률을 넘어, 극 중 가상 걸그룹 '헌트릭스(Huntrix)'의 노래가 현실의 빌보드 차트를 점령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이 눈부신 성공의 그림자 속에서, 게임 업계의 거인 라이엇 게임즈가 때아닌 '짝퉁' 논란으로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라이엇 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 와일드 리프트'(이하 와일드 리프트)가 '케데헌'의 인기에 편승하려다 벌어진 이번 참사는, 단순한 영상 퀄리티 문제를 넘어 생성형 AI의 무분별한 사용과 지식 재산권(IP)에 대한 존중 부재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조악함과 기괴함, 논란의 '와일드 리프트' 3주년 영상
사건의 발단은 '와일드 리프트' 중국 서비스 3주년을 기념하여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공개된 한 편의 영상이었다. 영상은 제이스, 드레이븐, 이즈리얼 등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인기 챔피언들이 아이돌 그룹을 결성해 몬스터와 싸우고 무대에서 공연을 펼친다는, '케데헌'과 노골적으로 유사한 콘셉트를 담고 있었다.
문제는 끔찍한 영상의 퀄리티였다. 팬들이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 공포를 느낀다고 표현할 정도로 캐릭터 모델링은 조악했다. 라이엇 게임즈가 '아케인'과 같은 명작으로 쌓아 올린 '애니메이션 명가'라는 명성을 스스로 걷어차는 수준이었다. 레딧(Reddit)을 비롯한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구체적인 문제점들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 총체적 퀄리티 붕괴: "3rd Anniversary"를 "3rnd Aniversary"로 잘못 표기하는 기본적인 실수부터 시작해, 영상 전반이 조악한 AI 생성물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팬들은 이를 "AI Slop(AI가 배출한 찌꺼기)"이라 부르며 혹평했다.
- 캐릭터 디자인 왜곡:
- 징크스: 상징적인 무기 '생선대가리' 대신 정체불명의 권총을 들고 등장했으며, 팔의 구름 문신은 장면마다 제멋대로 바뀌었다.
- 야스오: 트레이드마크인 장발은 온데간데없이 짧은 스파이크 헤어로 등장해 캐릭터의 정체성을 훼손했다.
- 오로라: 프레임에 따라 머리카락 길이가 바뀌고 등 한가운데에 뜬금없는 꼬리가 붙어있는 등 기괴한 모습을 보였다.
- 기타 챔피언: 이즈리얼, 드레이븐 등 다른 챔피언들 역시 원작과 심하게 동떨어진 모습, 불쾌한 골짜기를 유발하는 부자연스러운 표정과 눈 움직임으로 비판을 받았다.
- 성의 없는 연출과 사운드: 맥락 없는 스토리, 의미 없이 반복되는 군중 씬 등 영상의 연출은 총체적으로 부실했다. 심지어 영상에 삽입된 노래 가사조차 AI가 생성한 듯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의 나열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한 레딧 유저는 "내 눈이 저주받은 것 같다. 영상을 끝까지 볼 수 없다"며 강한 불쾌감을 토로했다.
'AI 표절' 의혹과 라이엇의 무책임한 대응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것은 해당 영상이 생성형 AI로 제작되었다는 강력한 의혹이었다. 영상 크레딧에 등장한 '이류 아웃라이어스(异类Outliers)'라는 이름의 스튜디오는 AI 기반 콘텐츠 제작사로 알려졌다. 팬들은 라이엇 게임즈가 비용 절감을 위해 애니메이션 산업의 데이터를 무단으로 학습한 AI 모델을 사용해 영상을 '찍어냈다'고 비판했다. "역사상 가장 돈이 많은 게임 회사 중 하나가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가?",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노고에 대한 정면 모독이다"와 같은 격앙된 반응이 주를 이뤘다.
팬들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와일드 리프트' 측은 해당 영상을 웨이보에서 삭제했다. 이후 데이비드 슈(David Xu) 총괄 프로듀서는 "외부 창작자가 만든 영상(creator-made video)이 우리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며, "더 잘할 수 있고, 앞으로 더 잘하겠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게시했다.
하지만 이 사과문은 오히려 불타는 여론에 부채질을 했다. AI 사용 여부에 대한 명확한 해명 없이 '창작자가 만든 영상'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책임을 외부 업체에 떠넘기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팬들은 "그래서 AI를 썼다는 것인가, 안 썼다는 것인가?", "'창작자 제작'이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지 마라"며 투명성 없는 사과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는 라이엇 게임즈, 혹은 중국 서비스를 담당하는 텐센트가 브랜드와 IP 관리에 대한 책임감이 얼마나 결여되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아류는 왜 오리지널을 이길 수 없는가
이번 사태는 단순히 '못 만든 영상'에 대한 해프닝이 아니다. 이는 현재 콘텐츠 산업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생성형 AI'와 'IP의 가치'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케데헌'의 성공은 단순히 'K팝 아이돌이 악마를 잡는다'는 신선한 설정 때문만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 매력적인 캐릭터 서사, 그리고 높은 완성도의 음악과 애니메이션이라는 '오리지널리티'가 존재한다. 팬들은 바로 이 진정성에 열광했다.
반면 '와일드 리프트'의 영상은 이러한 본질을 완전히 무시한 채 겉모습만 얄팍하게 흉내 냈다. 그 결과, 리그 오브 레전드와 '케데헌' 어느 쪽 팬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기괴한 혼종'이 탄생했다. 이는 창작의 고통과 노력 없이 손쉬운 성공만을 좇으려는 시도가 얼마나 공허하고, 결국에는 IP의 가치를 훼손하는 자해 행위로 이어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아류는 오리지널을 이길 수 없다'는 오랜 명제는 이번 '케데헌 짝퉁 논란'을 통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팬들은 더 이상 기업이 던져주는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IP에 대한 애정과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진정성 있는 콘텐츠를 가려내고, 무성의한 결과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는 '현명한 소비자'다. 라이엇 게임즈는 이번 사태를 통해 팬들의 신뢰를 잃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그리고 그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뼈저리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