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홈리스가리'의 뜻과 의미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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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연히 '홈리스가리(ホームレス狩り)'라는 단어를 접하고 한동안 머릿속이 멍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홈리스, 그리고 사냥을 의미하는 일본어 '가리'. 두 단어의 조합이 너무나 이질적이고 섬뜩해서 그 의미를 찾아보고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이 단어는 노숙인을 대상으로 재미 삼아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뜻한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생존이 걸린 하루하루일 텐데, 그 고통을 '사냥'이라는 놀이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회 현상에 대한 정보 전달을 넘어,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병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꼭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사냥'이라 불리는 잔혹한 놀이의 실체

'홈리스가리'는 1970년대 일본에서부터 사회 문제로 거론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2020년 일본 기후현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10대 소년들이 80대 노숙인 부부에게 몇 주에 걸쳐 돌을 던지고 폭행을 가해 결국 한 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가해자들의 동기는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노숙인을 '더러운 것'으로 취급하며, 마치 쓰레기를 치우는 것처럼 행동했다고 진술했습니다. 한 인간의 생명을 앗아간 행위를 저지르고도 그 무게를 전혀 알지 못하는 듯한 태도에 깊은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사실 이런 끔찍한 일이 비단 일본만의 이야기일까요?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홈리스가리'라는 용어만 쓰이지 않을 뿐, 뉴스에서는 심심치 않게 노숙인을 향한 '묻지마 폭행' 사건을 접할 수 있습니다. 서울역 광장에서 잠든 노숙인을 폭행한 사건, 노숙인의 얼마 안 되는 소지품에 불을 지르는 사건 등. 이 모든 것이 이름만 다를 뿐, 사회에서 가장 약한 존재를 향한 비겁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왜, 그들은 가장 약한 자를 향할까?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왜?'라는 질문입니다. 아무런 원한도 없는 사람에게, 그것도 이미 삶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비인간화'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합니다. 노숙인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게으르다', '더럽다'는 사회적 편견의 틀에 가두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한번 그런 낙인이 찍히면, 그들을 향한 폭력은 양심의 가책 없이 쉬워집니다.

여기에 또래 집단의 비뚤어진 동조 심리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혼자서는 못할 짓도, 여럿이 함께하면 책임감이 분산되고 오히려 용기가 되는 무서운 심리 말입니다.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장 손쉬운 상대를 찾아 화풀이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공격하는 행위는 결국 비겁한 폭력일 뿐입니다.

이것은 장난이 아닌, 명백한 '혐오 범죄'입니다

저는 '홈리스가리'를 절대 '철없는 장난'이나 '개인의 일탈'로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가 단지 '노숙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면, 이는 명백한 '혐오 범죄'입니다. 혐오 범죄는 한 개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을 넘어, 그가 속한 집단 전체에 대한 공포와 위협을 확산시킵니다.

한번 상상해보세요. 세상에 기댈 곳 하나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에게 가해진 무차별적인 폭력은 어떤 상처를 남길까요. 신체적인 고통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에 대한 마지막 남은 신뢰마저 산산조각 내버릴 것입니다. 이미 사회로부터 고립된 이들을 더욱 깊은 절망으로 밀어 넣는 행위는, 그들의 재기 가능성을 완전히 빼앗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범죄는 더욱 엄중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무관심을 넘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 '그래서 우리가 뭘 할 수 있는데?'라는 질문에 다다르게 됩니다. 솔직히 나 한 사람이 무언가를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막막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외면하고 침묵하는 순간, 우리는 암묵적으로 이런 폭력을 용인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모든 변화의 시작은 '관심'과 '인식의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길 위에서 마주치는 노숙인을 '더럽고 위험한 존재'가 아닌,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한 사람으로 바라보려는 작은 노력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거리에 나오게 되었는지, 우리 사회의 어떤 구조적인 문제가 그들을 방치하고 있는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이들을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이 더 튼튼해져야 할 것입니다. 안정된 잠자리와 따뜻한 식사, 그리고 다시 일어설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적어도 그들이 범죄의 무방비한 표적이 되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홈리스가리'라는 낯선 단어가 내 마음에 남긴 무거운 돌덩이는, 결국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이웃에 대한 무관심의 무게였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잠시나마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주셨으면 합니다. 우리의 작은 관심이 모일 때, 혐오가 아닌 존중과 연대가 깃든 사회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